당신이 겪고 있는 어둠이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 그 어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이 너무 밝아져서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미드소마(Midsommar, 2019)』는 공포라는 장르 안에 감정의 이면을 숨긴 영화입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심야의 공포’가 아닌 ‘대낮의 불안’이라는 새로운 감각을 제시합니다.
잃어버린 감정, 외면받는 슬픔, 무너지는 관계, 그리고 소속되고 싶은 욕망이 햇살 가득한 초록의 꽃밭 한가운데에서 피어오르며 섬뜩한 공감으로 스며듭니다.
끝나지 않는 낮
영화는 가족을 잃은 주인공 ‘다니(플로렌스 퓨)’의 고통으로 시작됩니다. 한순간에 부모와 여동생을 잃은 그녀는 불안과 슬픔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그 곁에는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이 있지만, 그는 그녀에게 정서적 위로를 주기보다는 관계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회피하려는 모습입니다.
그 와중에 크리스티안과 친구들이 스웨덴의 외딴 공동체 마을 ‘호르가’에서 열리는 9년에 한 번 있는 전통 축제에 참여하러 떠나게 되고, 다니는 마지못해 그들과 동행합니다.
도착한 마을은 꽃과 음악, 따뜻한 환대로 가득 차 있고, 밤이 되지 않는 백야(白夜)의 풍경은 이질적이지만 매혹적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축제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의식은 점점 기묘하고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의식 속에서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고, 사람들은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박수로 기립니다. 외부에서 온 친구들은 하나둘씩 실종되거나 사라지고, 그 모든 상황이 이 마을에선 ‘질서’라는 이름으로 포장됩니다.
끝나지 않는 낮, 그 밝은 시간 속에서 관계는 조용히 붕괴되고 감정은 외부의 통제 없이 해체되어 갑니다.
감정의 무너짐
다니는 점점 공동체에 동화됩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슬픔을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환대받고, 이해받는다고 느낍니다.
크리스티안은 그 안에서 점점 이방인이 됩니다. 무심했던 그는 이 공동체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다니와의 감정적 거리도 극단적으로 벌어집니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부터, 다니는 점점 ‘호르가’ 사람들과 동화되며 자신 안의 감정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그대로 끌어안고 사람들과 함께 울며, 그 공감의 감정을 처음으로 ‘소속감’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입니다.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가 흐려지고, 관객은 그 감정에 오히려 설득당하고 마는 순간을 겪게 됩니다.
이 영화는 '공포'보다 '감정'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다니가 경험하는 감정은 공포스럽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너무 낯익고, 그 속에서 관객은 오히려 자신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상징 해석까지
『미드소마』는 수많은 상징으로 구성된 이야기입니다.
‘호르가’ 마을 자체가 하나의 상징체계로 작동합니다. 절대적 공동체, 개인보다 집단의 질서를 우선시하는 사회. 그리고 ‘희생을 통한 순환’이라는 논리를 절대 진리로 믿는 사람들.
다니가 마지막에 꽃으로 가득한 드레스를 입고 ‘메이 퀸(May Queen)’으로 선출되는 장면은 단순한 축제의 우승자가 아니라, 그녀가 공동체의 상징으로 편입되었음을 나타냅니다.
크리스티안이 말 그대로 ‘희생 제물’이 되는 과정은 이들의 전통이 얼마나 잔혹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다니의 선택이 내면의 정서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이전의 다니가 아닙니다. 상실의 슬픔을 겪고, 외면받고, 그러나 새로운 감정의 방식으로 소속된 존재입니다.
그녀의 마지막 미소는 그래서 섬뜩합니다. 기쁘거나 슬픈 표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감정을 던져버리고 남겨진, 완전히 새로운 감정의 상태입니다.
📝 마무리하며 - 끝나지 않는 낮에서 끝나버린 관계
『미드소마』는 낮의 영화입니다. 어둠은 없지만, 마음속 어둠은 더 짙어집니다.
상실과 분열, 소속에 대한 욕망, 그리고 타인을 선택하고 배제하는 감정의 끝자락에서 이 영화는 묻습니다.
“당신은 감정을 어디에 두고 있나요?”
그리고 어쩌면 다니는, 가장 끔찍하면서도 유일하게 자신에게 진실한 선택을 그 백야 속에서 했을지도 모릅니다.